‘회의'(會議)와 ‘회고'(會告)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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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會議)와 ‘회고'(會告)의 시간

 

JANDI-blog-content-smart-work-author-profile-image-성수동호랭이

 

 

필자는 대학 시절 회계학을 전공했다. 어느 우스개 이미지에는 “회계시험을 봤다. 못 먹던 술을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멘트가 쓰여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남들이 기피하고 어려워하는 회계학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경영학부에 진학하고 일 년이 지나자 학교는 나에게 경영학과냐 회계학과냐 하는 선택권을 제시해 주었다. 사실 하나도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 왜냐면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한 학기 만에 학과선택을 끝냈으니깐.

 

앞서 말했듯이 회계학도의 길을 걷기로 이유는 간단명료하고도 단호했다. ‘팀플하기 싫어서’ 수많은 경영수업과 교양수업에서 끝도 없이 나타나는 팀 프로젝트 과제들 덕분에 진로를 쉽게 정할 수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제를 하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나는 잘 아는 혹은 잘 모르는 사람들과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진행되는 조모임, 회의 시간이 너무나도 싫었으며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누군가는 그 미팅시간에 캠퍼스 커플의 환상을 품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했겠지만 나는 그 시간이 싫었다. 일단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자세는 가뭄에 콩 나듯이 있었고, 개개인의 의견을 무시 되었으며, 나름의 공리주의 비슷한 분위기에 따라 리더의 의견에 의해 프로젝트가 좌지우지될 뿐이었다.

 

나름 수평적인 관계라는 학우 관계에서도 나이와 학번에 의한 서열은 정해져 있었으며 최상위권을 차지한 이들에 의해 프로젝트는 진행되었다. 그들의 생각이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 그 문화는 캠퍼스에서부터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

 

파릇파릇 신입생들이 블링블링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는 “니가 잘 모르나 본대..하하.. 자 이거 봐봐”가 단골 멘트였다. 팀 프로젝트의 결과물과 결론은 항상 학교가 생겼을 때부터 만들어졌던 양식을 따라 완성된 것만 같은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주위에서 개인주의(우리 엄마는 극단적 이기주의라고 칭함) 끝판왕 소리를 듣고 자랐던 나로서는 안 그래도 혼자 일 하는 것이 편한데 팀플을 할 때면 재미도 없고 어차피 내 의견도 무시되기 일쑤이니, 이런 활동은 내 인생에 1mmg 도 도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계학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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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턴시절 회사 미팅 장소

 

 

회의 (會議) [회ː의] 여럿이 모여 의논함

본래 회의라는 말뜻이 앞서 단어의 정의처럼 의논한다는 것인데 우리 대한민국의 회의 문화는 어떠한가? 대학교 혹은 그전부터 학습된 덕분에 우리의 회의는 보고의 연속이다. 의논하는 즉, 쌍방향 communication이 아닌 한 방향으로 보고되면, 받고 다시 한 방향으로 피드백이 내려가는 단방향 communication만이 회의실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정도 되면 “우리 회의 합시다”가 아닌 “우리 회고(會告) 합시다”로 단어를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백번 양보해서 어느 기업 회의시간엔 항상 각자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열린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어찌나 세상엔(특히 한국에는) 서로를 respect 하는 listener 의 숫자가 적은 것인지 약자는 자그마한 기회가 주어져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쉽지 않다. 끝까지 들어봐야 화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영어 혹은 다른 나라의 말과는 다르게 끝까지 듣지 않고 반쯤만 들어도 화자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한국어의 우수성 때문인지 말이 채 끝나지 않았건만 “아니 아니!” 혹은 “뭘 모르네”라는 멘트가 먼저 튀어나오기 일쑤다. 제발 말이나 한번 끝까지 할 수 있게나 해줬으면…  결국 다시 도돌이표.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인턴을 하면서 회의문화의 문제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국 회사의 회의는 앞서 말했듯이 회고로 단어를 바꿔야 한다. 회의 시간엔 “이번 주는 본인이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할 것이며, 결과는 이렇게 나왔습니다.”가 회의시간의 주를 이뤘으며 종종 있는 어떠한 이벤트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 나 같은 신입이 먼저 “저는 이렇게 생각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한다면 “음 그거 좋구먼!”하는 대답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결국 상사님들 마음대로 진행될 뿐이다.

 

미국 인턴 시절엔 자신의 업무에 대한 보고 보다는 항상 어떠한 이슈나 이벤트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서로를 평가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아무리 나이가 많거나 상사라 할지라도 잘된 점은 잘했다고 평가하며 과정이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이러한 점이 잘 못 되지 않았나 하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하물며 나 같은 인턴도 의견을 제시해야 하므로 긴장과 집중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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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서당>
(image source: 국립중앙박물관)

 

이러한 문화의 원인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 옛날 소크라테스의 산파식 수업을 시작으로 질문과 답변을 통해 수업이 진행되어오던 서양 문화권 혹은 다른 문화권과는 달리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거의 전무했다. 그저 훈장님부터 선생님까지 어른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그대로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되었으며, 왜? 라는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냥 그게 교과과정 내용이니깐 그것만 알면 돼’라는 식이 기나긴 시간을 거슬러 내려왔다.

 

어딘가엔 항상 본인의 뼛속까지 사대주의적 마인드가 자리 잡아 서구문화를 찬양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개인적으로 좋은 것은 좋다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성공하는 회사는 주로 서양 문화권에서 나오는지 우리 모두가 곰곰이 생각해 보자.

 

사실 한 나라의 문화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우리나라의 생활문화는 서구화되고 있는 현시대에 회의문화 정도 서구식으로 바꾸는 것쯤은 너와 나와 우리가 노력하면 쉽게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나만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회사를 위해 더 오버해서 나아가 가까운 미래에 전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아이디어나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나오길 바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인 당신, 우리부터 당장 내일부터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언제 어디서나, 반응 좋게, 누구에게나 동등한 지지를 보내는 경청하는 listener 의 마인드로 let’s respect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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