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시대 토종 협업도구 ‘잔디’ 깔고 아시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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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도전하고 세상을 혁신하고 있는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국방일보 ‘스타트업의 세계’가 9월부터
새로운 필자인 박지영 아산나눔재단 스타트업센터 팀장과 함께합니다.

‘Remote Work Fair’에서 온라인 협업툴 ‘잔디’를 발표하는 김대현 토스랩 대표.

 

“그냥 그게 회사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어요.”

워드프레스(웹사이트를 쉽게 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토매틱을 2005년 설립한 매트 뮬렌웨그의 말이다. 매트 대표는 전 세계 인재들이 물리적 장소에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하고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도입한 방식이 ‘원격 근무(Remote Work)’였고, 그 결과 오토매틱의 800여 명 직원들은 현재 총 68개 국가에서 근무 중이다.

국내에서도 소수의 스타트업이 원격 근무 방식을 도입하여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시도해왔지만, 대면 문화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일반적인 정서 때문에 쉽사리 전파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이 발생했고, 이제 원격 근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도래했다. 다른 장소에 있어도 동료들과 협업하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업무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 원격 근무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메신저, 파일과 정보 등을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일 것이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 모두 알고 있는 말이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트렌드를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대현 토스랩 대표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시절부터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다고 한다. 그는 삶에서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업무 환경에서 효용과 가치를 만들고자 토스랩을 창업했고, 한 회사 내에서 부서나 팀이 협업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협업 툴 ‘잔디(JANDI)’를 지난 2015년 출시했다. 잔디는 개인용 메신저인 카카오톡의 회사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토스랩이 ‘잔디’ 서비스를 시작한 2015년, 국내 대기업은 이미 사내 메신저를 자체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사내 메신저를 활용할 경우, 회사 내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업무 외 시간에는 개인용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에도 카카오톡으로 업무 관련 메시지를 주고받게 되면서, 일과 삶의 구분이 모호해진다는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직장 내에서 업무 처리를 위해 이메일과 사내 메신저, 개인용 메신저 등 다양한 채널을 이용하게 되면서 비효율이 존재하게 됐다.

아시아 협업툴로 도약하고 있는 ‘잔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클수록 이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에게는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 통일되지 않은 업무 소통으로 파일 정리 등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서, 김대현 대표는 업무의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한 협업 툴의 필요성을 확신하게 된다.

김대현 대표는 어떻게 하면 협업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당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었던 ‘슬랙(Slack)’에 주목했다. 슬랙은 실시간 메신저 기능과 파일 관리 기능을 모두 갖춘 협업 툴이다. 슬랙을 분석해보니 북미 문화권의 사용자 경험 위주로 서비스가 구현되어 있었다. 잔디는 슬랙과 경쟁하기보다는 아시아 시장에 적합한 서비스로 특화하여 틈새시장에 집중하고자 했다.

북미권과 아시아의 업무 문화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서양은 업무 효율성과 정보의 공개, 투명성을 중시하는 반면 동양은 업무 외적인 인간관계, 의사결정 체계 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화의 차이와 아시아권 고객들의 사용성에 집중해 ‘현지화, 가격 우위, 고객 지원’이라는 3가지 전략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아시아 시장의 유저에게 친숙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 아시아 언어를 서비스했고, 아시아 문화에 적합한 이모티콘도 제공했다. 또한 업무용 메신저의 특성상, 고객의 요구 사항에 대한 빠른 대응이 필요했다. 토스랩은 고객의 의견을 빠르게 반영하기 위해 고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CX팀(Customer Experience Team)을 신설했다. 고객들은 실시간 온라인 상담을 통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불편 사항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새로운 협업 툴을 도입하기까지는 내부 설득과 오랜 의사결정의 시간이 필요한 점을 고려, 토스랩은 초기 타깃 고객으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집중했다. 초기에 무료 버전을 사용 가능하도록 배포해 고객들이 실제로 사용해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국내에서 협업 툴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았던 2015년도부터 꾸준히 고객들의 피드백을 통해 제품을 고도화해왔다. 그 결과 사용자가 꾸준히 증가해 사내 메신저가 있는 대기업도 팀 단위로 잔디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잔디’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LG CNS, CJ, 넥센타이어, 코스맥스 등 중견·대기업까지 고객군이 확장됐다.

이제는 원격 근무가 일상이 되었지만, ‘서로 다른 공간, 시간대에 머무르더라도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존 업무 방식과 비교하면 혁신의 첫걸음이었다. 2020년 현재, 비대면 소통이 현실로 다가온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업무 관련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협업 툴은 필수적인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잔디는 올해 4월 고객 확보 200만 명을 돌파하였고, 대만에서는 협업툴 1위로 자리 잡았다. 이 또한 창업 초기에 타깃 시장을 아시아 국가로 정하면서, 국내 서비스 출시와 동시에 대만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결실이기도 하다. 현재 토스랩은 대만 외에도 말레이시아, 일본으로 서비스를 확장 중이다. 김대현 대표가 구현하고자 했던 ‘업무와 삶의 분리, 업무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스마트워크’는 ‘잔디’의 확장과 함께 아시아 시장에서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본 글은 박지영 아산나눔재단 스타트업 센터 팀장님의 기고로 국방일보에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