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뜨거운 여름, 금요일은 여유롭다?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 제도
‘뉴욕’의 뜨거운 여름, 금요일은 여유롭다?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
TGIF(Thank God It’s Friday)는 단순한 유명 체인 레스토랑의 이름뿐만 아니라, 금요일을 간절히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소망이 절절하게 담긴 은어이다. 한국에서도 ‘불금’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며 간절히 금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만큼 주말을 기다리는 고달픈 직장인들이 많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해가 뜰 때 출근해 해가 져야 퇴근하는 한국 직장인의 일상. 두말할 것도 없이 주말을 고대할 수밖에 없게 만들지만 사실 주말이 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거실에서 TV를 보는 것이 현실이다.
주말 내내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미루어 둔 드라마를 보고 나면 어느새 일요일 밤! 토요일 하루 쉬고, 일요일 체력이 회복될 즈음 되니 출근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쳇바퀴 같은 일상은 일의 능률을 떨어트리고, 집중력 또한 저하시킨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 날씨면 더더욱 말이다. 게다가 SNS에 올라오는 휴가 사진들은 당연히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러한 실정은 지구 반대편, 콘크리트 정글이라 불리는 뉴욕 도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 많은 디자인 회사들과 수 만 달러의 거래가 오가는 이 정글에서도 야근 행태는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 일례로 토리 버치(Tory Burch)에 근무 중인 주니어 디자이너는 화요일 새벽 3시에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찍은 셀카를 올릴 정도이니.
그러나 아스팔트 열기가 후끈 올라오는 뉴욕 도시도 금요일만 되면 유독 여유롭고 활기찬 분위기로 바뀐다. 넥타이도 풀어 헤치고, 길거리에서 타코와 맥주를 즐기는 뉴욕 직장인들을 보며 “자유로운 뉴욕, 오 부러워!”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전부 ‘열심히 일한 자, 열심히 즐겨라!’ 라는 모토에서 출발한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Summer Friday Off)” 제도 덕분이다.
금요일 하루는 쉬세요, 떠나세요, 재충전 하세요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란 말 그대로 여름 금요일은 일하지 않는 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보통 5월 중순부터 시작해 9월 초까지 계속 되며 여름 휴가 스케줄과는 별개로 제공된다. 회사마다 자유로운 제도를 가지고 있으나, 유상 휴가의 연장선으로 보면 된다.
금요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대신, 하루 빨리 ‘주말’을 시작하는 제도로 뉴욕 직장인으로 하여금 근교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그 다음 주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직장이나 직급에 따라 다르나, 신입 사원들도 공평하게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를 제공받으며 이는 회사 측에서 미리 스케줄 표를 작성해 전달한다. 보통 격 주로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며, 중간 중간 오전만 근무하고 퇴근할 수 있다. 누구든지 누릴 수 있는 제도인 만큼 ‘눈치’보지 않고 쓸 수 있어 뉴욕 직장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뉴욕 직장인들도 한국처럼 업무가 바쁜 시기에는 휴가를 내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를 통해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지인, 친척, 친구들과 필라델피아, 몬탁, 메인과 같은 여름 휴양지로 ‘미니 휴가’를 다녀오거나 평소 할 수 없던 다양한 활동을 즐긴다.
혹은 여름 휴가 기간과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 날을 매치해 보름 간 여유로운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이 ‘멋진’ 제도는 1960년경부터 시작 되었으며, 뉴욕 상류층들이 여름 휴양지로 꼽는 햄튼(Hampton)지역에서 느긋하게 태닝을 받기 위한 게 시초다. 이 제도는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해 오늘날에는 “좋은 회사”가 갖춰야 할 복지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 제도는 회사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뉴욕 타임즈의 부사장 Peter Vincent 는 “추가로 갖는 여가 시간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이라고 말하며 “스마트화된 요즘 시대에는 금요일 출근을 하지 않아도 중요한 업무에 큰 문제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신입사원이 말하는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 제도
뉴욕 직장인들은 썸머 프라이데이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국내에도 잘 알려진 패션 브랜드 ‘코치(Coach)’의 제품 개발 팀에서 근무 중인 사라 바시어(사원, 26세)는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 제도를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5월 부터 근무를 시작한 그녀는 업무를 배우는 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금요일마다 회사 출근 대신 개인적인 시간을 가짐으로써 업무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말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정신 없이 수백 개의 제품 디자인을 보고, 상사에게 회사 시스템을 배우다 보면 저녁 8~9시가 되어야 집에 가요. 장시간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집중력은 떨어지고, 업무 속도도 느려지죠.
하지만 한 여름의 금요일 아침,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코치에서 온 이메일 몇 통만 답장한 후 친구들과 근교 여행을 다녀오면 스트레스가 풀려 다시 열심히 일할 기분이 나더군요.
뿐만 아니라,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 제도를 이용해 회사 동료들과 센트럴 파크 공원 봉사활동 및 각종 단합 프로그램도 함께 할 수 있어 회사 적응에 큰 도움이 돼요. 같이 일하는 동료를 알아가고, 존경하며 그 과정을 통해 제 자신도 행복해집니다. 자연스레 애사심도 생기구요. 개인적으로 썸모 프라이데이 오프 제도에 대해 지지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정녕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 제도는 단점이 없단 말인가? 금요일을 쉼으로써 월요일에 산더미 같은 업무가 기다리지 않겠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녀는 “우리 회사랑 거래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 제도를 이용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회사는 저희가 쉬는 걸 알고 있어 업무 폭탄을 던져 놓지 않아요”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뉴욕은 점점 바뀌는 중… 한국도 바뀔 수 있을까?
뉴욕은 지난 60년 대부터 이 제도가 발전해왔다. 아직 모든 회사에 도입되진 않았지만, 야근과 주말 출근 등으로 악명 높은 패션 디자인 업계에도 점점 많은 유명 패션 하우스들이 이 제도를 채택하는 건 그만한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행복한 직장인이 행복한 회사를 만든다”라는 신조가 사회 저변에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떨까? 국내의 경우, 토요일이 쉬는 날로 지정된 것도 근 10여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부족한 휴식 시간을 짧고 강하게 즐기기 위해 한국 직장인들 사이엔 ‘불목, 불금, 불토’가 일상화 되어가고 있다. 각종 포털 사이트나 커뮤니티에는 오늘도 야근이 적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댓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진정 행복한 노동 인구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 되었으며, 여유를 찾는 게 사치가 되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업무 효율과 성과는 업무 시간과 정비례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미생>의 ‘장그래’가 그랬듯,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 출근을 하는 직장인이 꼭 우리가 될 필요는 없다. 썸머 프라이데이 오프 제도를 통해 뉴욕 직장인들이 왜 여유로운 금요일을 보낼 수 있는지,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