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결심한 3년 차 직장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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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을 결심한 3년 차 직장인의 이야기

– 직장생활, 야근에 대한 나의 오해와 편견

 

이히늬

 

 

나는 4년 차 직장인이다. 2012년 사회생활을 시작해 3년 간 일 하다 올해 이직했다.

 

사회초년생이 직장에 들어간 이후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이게 아닌데’라는 환상 속에서 빠져나오기까지 3년이 걸렸던 것 같다. 연봉, 조직 문화, 직무 적성 등… 회사를 나온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회사를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야근’으로 인해 내 삶과 일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3년 중 최소 1년가량은 정시에 퇴근했지만, 나머지 2년은 늘 저녁 8시~11시까지 일했다.

 

내가 야근을 해야 했던 이유는 첫째, 다른 직업은 안 가져봐서 모르겠지만, 광고/홍보 업무의 특성상 매번 다른 프로젝트를 맡고, 짧은 시간 동안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많다. 늘 새로운 도전(이라고 쓰고 야근이라고 읽는다)의 연속이다. 둘째, 대표님도 야근을 많이 하신다. 직원들보다 더 많이 연구하다가 늦게까지 근무하실 때가 많다. 이는 곧 조직문화와 직결되는데, 우리 회사에는 의자에 엉덩이 오래 붙이고 있는 사람이 성과가 좋다는 분위기가 깔려 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스스로 야근의 패턴을 만들고 있었다. 마감 직전이 돼서야 일을 하거나, 온종일 집중이 안 되어 시간만 보내다 주말 출근을 한다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주말을 대충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점점 커졌다. 내 삶에 회사 이외의 다른 영역들이 사라졌다. TV를 보기도 어렵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하기 힘들다. 그렇게 내 삶의 다양성이 사라지자, 타격은 결국 업무 성과로 다가왔다. 할 수 있다는 말보다 ‘이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안 돼’라는 말이 늘었다. 매너리즘에 빠지게 됐다.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과 정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나는 새로운 것을 충전하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모하기만 했다. 이대로는 평생 일하기 싫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회사를 나왔다.

 

 

편견1. 회사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직장은 집이나 학교와 같이 편안한 곳이 아닌 생존의 공간이었다. 상사의 눈치에 따라 퇴근 시간을 퇴근 시간이라 부르지 못하고, 법정 휴일에도 묵묵히 나와야 했던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이다. 직장은 조직이 추구하는 공동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직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나는 직장에서는 회사보다 나를 우선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어느 날 한 기업의 <직장서 하지 말아야 할 33가지>라는 기사를 보게 되면서 회사가 나보다 먼저라는 고정관념이 흔들리게 됐다. “퇴근할 때 눈치 보지 마요. 당당하게 퇴근해요”, “타인에게 휘둘리지 마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에요”,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 마요. 당신의 삶이 먼저에요”등 의 사내 규정을 보면 여기가 정녕 회사인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이 기업은 혁신적인 기업 문화로 언론에 알려지며 취준생들에게 꿈의 직장으로도 불리는 제니퍼소프트다. 2005년 설립된 소프트웨어 개발 벤처기업인으로 총 직원 26명이 근무하고 있다. 제니퍼소프트는 주당 35시간 근무를 장려하고 있으며 권장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다. 그나마도 1시간 줄어든 7시간 동안 일하며,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직원의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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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소프트 사옥
(image source: 제니퍼소프트)

 

 

이러한 자율근무가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도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성과를 높인다는 기업문화가 깔려있다. 제니퍼소프트는 일찍이 구성원들의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루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 삶을 접목했다.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지하에 수영장을 만들었으며 수영 시간은 근무시간에 포함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개인의 개성을 우선 시 할 수 있게 되면서 본인에게 가장 효율적인 업무 방법을 적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일에 쫓기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고 한다. 제니퍼소프트 이원영 대표는 “현재의 시스템이 효율적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생각을 왜 못하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돈만 벌게 해주면 다른 열망은 다 억제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시스템에 왜 질문을 던지지 않는가?” 라고 말한다.

 

 

편견2. 경쟁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아무리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일을 하는 이상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다른 팀보다 나은 실적, 다른 업체보다 나은 실적. 작년보다 더 나은 실적을 올리자. 이뿐만 아니라 항상 어제의 나보다는 나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지난달보다는 나아져야지, 사원일 때보다는 나아야지, 경쟁력을 가져야 노후에 대비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물론 경쟁 자체는 더 나은 결과물을 끌어낼 촉매제가 되지만, 과도한 경쟁은 업무 스트레스와 장시간 근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출판 기업은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는 것보다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자’는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기업의 직원들은 오후 4시면 칼퇴근한다. 이곳은 윤구병 대표가 운영하는 ‘보리출판사’다.

 

보리출판사는 2012년부터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4시 퇴근하는 하루 6시간 노동제를 실험해왔다. 노동 시간 감축에 따른 임금 감소는 없다. 대신 연장 근로가 발생할 시, 연장 근로시간만큼 적립해 휴가로 쓰는 ‘시간적립제’를 활용하고 있으며 적립한 시간은 대체휴가로만 쓸 수 있다. 수당으로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가지고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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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출판사 사옥
(image source: 보리출판사)

 

 

하루 6시간 근무를 통해 직원들의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간식 타임, 회의 시간은 줄었고 노동 강도가 높아졌다. 6시간 이내에 일을 마치고 퇴근하기 위해서 집중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오후 4시 퇴근을 통해 몸이 아파 평원을 가기 위해 회사의 양해를 구해야 했지만 이젠 퇴근 후 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해졌다. 월간지나 단행본 마감을 앞두고 당연한 관행처럼 이어져 온 밤샘 작업도 이 회사에는 없다.

 

하루 6시간만 일해도 회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러한 실험을 시작했다는 윤구병 대표는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소수 부자에게 부를 집중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지, 고루 나누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서 노동 시간이 길어지게 됐다”며 “자본의 논리에서만 벗어나면 하루 6시간만 근무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당장은 어렵지만, 문제 의식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새로운 곳으로 직장을 옮겼지만, 노련한 사회생활 선배들에 따르면 어딜 가든 회사는 비슷하다고 한다. 야근 때문에 뛰쳐나왔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회사와 야근에 대한 나의 편견이다.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 말 것. 언제나 나의 삶이 먼저다.’, ‘많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자’, ‘경쟁하지 말고 빈 고리를 메우자’

 

직장인이라면, 야근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일 것이다. 야근으로 인한 저녁 없는 삶이 내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업무 성과에 영향을 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나를 망가뜨린다면, 야근이야말로 피해야만 하는 숙명이 아닐까? 하루아침에 관성과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어렵지만,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부터 실천해본다. 영혼이 있는, 지속 가능한 직업인으로서 살기 위해서. 그럼 오늘도 칼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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