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직장, 그들의 미팅 문화가 바뀌고 있다
미국 직장, 그들의 미팅 문화가 바뀌고 있다
영화, 드라마에 비친 미국인들의 직장 생활을 보면 커피 한 잔의 여유, 센트럴파크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일하는 게 일상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필자 역시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수많은 부러움과 ‘복에 겨운 투정’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실제 미국 직장인들의 삶이 여유가 넘칠까? 이들은 환상적인 직장 생활을 즐기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No no no. 한국이나 미국이나 직장 문화는 유동적이지 못하다. 그도 그럴 것이, 몇천 명에 달하는 사원들이 일하는 곳인 만큼 제대로 지침을 따르지 못하면 무법지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 곳 또한 하루종일 이어지는 미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마감 미팅, 샘플 색상 미팅, 시니어 레벨 미팅, 생산팀 미팅, 퇴근 전 체크 업 미팅, 그리고 퇴근 전 최종 체크 업 미팅까지. OMG(Oh My God).
위와 같은 비효율적인 미팅 스케줄은 뉴욕에 위치한 세계적인 핸드백 브랜드 회사의 실제 상황으로 에서 비일비재하게 목격할 수 있다. 미국 국가 조사기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은 하루 업무 시간의 37%를 미팅에 사용하고 있고, 47%의 설문 참여자가 미팅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무려 50%에 육박하는 미국 근로자들이 미팅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아름다운 미국 직장인의 삶을 상상한 사람들에게 나름 충격적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실리콘 밸리 문화로 대표되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의 사풍과 미팅 문화는 미국 내에서도 눈에 띄기 마련이다. 구글(Google)은 이와 같은 비효율적인 미팅 문화를 막고자 구글 캘린더(Google Calendar)를 활용해 일정을 조율하고, 구글 행아웃(Google Hangout)을 통해 미팅을 위한 물리적인 시간과 이동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구글과 같은 IT 기업을 시작으로 최근 미국 내 미팅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먹고 즐기는 미팅 문화를 가진 회사, 미팅에 지각하면 노래를 불러야 회사, 미팅 수를 줄이고 갈라(Gala, 일종의 파티 같은 행사)까지. 독특하다 못해 이상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업무 효율성’과 맞닿아 있는 이들 회사의 미팅문화를 취재해 보았다. 본문에 앞서 이들 기업의 공통점을 말하자면, 회사 구성원을 ‘일하는 기계’가 아닌 ‘행복한 직원’을 만들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팅? 먹고 즐깁시다!
아시아 문화와 소식을 전하는 스타트업 ‘KStarz‘에서는 미팅 겸 한식 요리 클래스를 연다. 스타트업 업무 특성상, 잦은 야근과 미팅으로 회식이 어려웠는데 이 모든 걸 해결하고자 다 함께 한식 요리 클래스에 참여하며 미팅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KStarz’뿐만 아니라 각종 단체나 회사에서 건전한 미팅 문화의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KStarz’의 경우, 요리 재료를 준비하는 동안 간단한 수다 겸 차 주 안건에 대해 논의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한국 음식(잡채, 해물 파전, 미역국)을 함께 요리하며 한 주 묵었던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한다.
‘KStarz’의 사만다 CEO는 “최근 유행하는 한식을 요리하며 직원들과 친해지고, 이렇게 재미있는 활동을 통한 자연스레 즐거운 미팅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참여하는 구성원들로부터 일에 대한 애착도 높아지고 덩달아 애사심 또한 높아졌다는 얘기를 듣곤 하는데요.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요리 클래스는 회사가 끝나고 참여하기에 때문에 그 다음 날은 오후 출근 혹은 전원 휴가를 내곤 합니다. 덕분에 우리 회사 직원들은 미팅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취재 당일, 요리교실이 진행된 헬스 키친의 ‘반찬스토리-Banchan Story‘ 김신정(Kim Shin Jung) 대표는 “최근 한식의 인기와 더불어 회사에서 모임, 미팅, 사교 등 다양한 이유로 우리 스튜디오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과거엔 정말 요리를 배우려는 이들이 찾아 왔다면 요즘에는 ‘KStarz’와 같은 회사처럼 특정 목적 때문에 찾는 단체 손님들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고 밝혔다.
유쾌하지만 효율적인 그들의 미팅 문화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미국의 미팅 문화. 그 이유는 스타트업 CEO 및 경영진들이 자신이 겪은 비효율적인 미팅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팅 문화 및 시스템을 정립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팅의 고질적인 문제인 ‘지각’. 정시 참석을 압박받는 신입 사원, 과장부터 아무 이유 없이 10분씩 늦는 미팅 문화에 반기를 든 기업이 있다. Cvent의 Darrel Gehrt 부사장은 이런 악습을 바꾸는 데 소매를 걷어붙였다.
“10분 혹은 그 이상 늦게 오는 잘못된 문화가 있었어요. 이건 비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몹시 불쾌한 악습인데요.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심하던 중 새로운 ‘벌’을 만들었습니다. 그건 바로 지각한 구성원이 동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규칙이었는데요. 생일 노래, 국가, 가요든 뭐든 노래 한 곡을 뽑아야만 합니다. 단순히 잔소리나 경고와 같은 부정적인 방식 대신 웃음을 자아내는 벌칙을 찾아내 지각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었어요.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었어요. 덕분에 이젠 미팅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어 슬픕니다.”라고 말했다.
뉴욕 Keller-Williams Realty(켈리-윌리엄 부동산)은 미팅 중 전화벨이 울리면 무조건 KW Cares라는 비영리 재단에 기부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미팅 참여 중 나도 모르게 전화벨이 울린다면? 아쉽지만 저녁 맥주값을 KW Cares에 기부해야 한다.
Tripping.com에서는 미팅 시간을 지키기 위해 스톱워치를 사용한다. 모든 미팅은 30분으로 제한 되어 있으며, 이는 최단 시간에 최대한의 효율을 이끌어내고자 하기 위해서이다. 30분 내에 미팅을 끝내지 못하면 ‘맥주 바구니’에 $5를 기부해야 한다.
미팅 문화, 워싱턴 DC도 변하고 있다?
최근 필자는 워싱턴 DC에 다녀왔다. 뉴욕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워싱턴 DC는 디자이너나 엔터테이먼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공무원, 회계사 등이 많아 업무 분위기나 대화 주제도 다르다. 뉴욕 회사원들이 주로 섹스 앤드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사이코 같은 상사에 시달리는 게 일상이라면 워싱턴은 업무 자체에서 오는 진지함과 책상 앞에서 꼼짝없이 근무해야 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워싱턴에 사는 직장인들은 숨 막히는 미팅 문화가 바뀌길 바라며 일요일마다 기도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기도가 먹혀서일까? 보수적인 워싱턴 내 회사들도 최근 미팅 수를 줄여가고 있으며, 일부 회사의 경우, 분기마다 갈라(Gala, 파티와 비슷한 행사)를 주최하는 것으로 미팅을 대체한다고 한다. 또한, 높은 직책에 있는 인원이 승진 혹은 퇴임을 할 경우 전사적으로 갖는 미팅을 Gala로 대체함으로써 좀 더 편하고, 색다르게 즐기는 형태로 미팅 문화가 바뀌고 있다.
위 기업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미국 내 회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미팅 문화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변화가 있는 걸까? 앞서 언급하였듯이 미국 직장인들의 절반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미팅에 대해선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효율적인 업무 진행을 위해 필요한 미팅이 도리어 그 문화를 역행하게 만드는 상황. 이에 따라, 본질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측면에서 미팅 문화를 바꾸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또한 경직된 조직 문화로 인해 잘못된 미팅 문화가 잡혀 있다. ‘뭐 그거 가지고 그래’라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애플, 페이스북, 구글 같은 회사가 나오려면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미팅 문화, 좀 더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우리가 투자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