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사 슈퍼 에디터로 살아남기
잡지사 슈퍼 에디터로 살아남기
잡지의 ‘잡’은 섞일 잡(雜)자다. 모든 정보가 뒤섞여 있는 종합 선물 세트란 의미이다. 잡지사도 신문사처럼 부서가 딱딱 나뉘어 있으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물론 각자 맡은 섹션이 정해져 있지만 크게 의미가 없다. 개편 때마다 하는 일이 달라지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취재해야 하는 분야가 달라지기 때문. 고단함의 상징인 다크서클을 늘 달고 사는 잡지 에디터들. 그들이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
좋은 기사를 위한 넓고 깊은 지식
‘에디터’란 직업은 사실 말 자체가 애매하다. 직역하자면 ‘편집하는 사람’ 정도가 될 터. 하지만 현실에선 ‘글도 잘 쓰고, 취재도 잘하고, 기획도 잘하고, 편집도 잘하는’ 슈퍼맨을 원한다. 다른 직업과 달리 일의 경계가 모호하고 여러 가지 내용을 다뤄야 하는 만큼 가장 중요한 건 멀티플레이어 적인 역량이다.
모름지기 좋은 에디터란 한 분야만 잘 알고, 하나의 글쓰기 톤만 가지고 있어선 안 된다. 패션, 스포츠, 자동차, 뷰티 등 각자의 전문 영역은 존재하지만 내 분야가 아닌 내용도 취재 오더가 내려오면 일필휘지로 쓸 수 있게끔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 때론 감성적이고 논리적인 글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칼럼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때론 유행어를 끌고 와 젊은 독자들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 능력에 못지않게 중요한 능력이 또 하나 있다. 영화, 연극, 전시, 공연, 여행 등 문화생활을 게을리하지 않는 생활 패턴이다. 말 그대로 잡다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선, 나부터 먼저 잡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아무리 열심히 정보를 검색한들, 직접 해보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대중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내가 직접 경험해 보는 것. 공감 능력이 뛰어난 소통하는 에디터가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이미지에 대한 감각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프로 작가만큼 사진을 잘 찍고, 전문 리터쳐만큼 보정을 잘할 수 있는 스킬이 있다면 좋겠지만, 에디터에게 이 정도 수준까지 요구하진 않는다. 다만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이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할 수 있는 감각적인 눈과 이미지를 배열하고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레이아웃 구성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스킬이다. 제아무리 기똥찬 기획과 취재와 기사 작성이 끝났다고 한들, 독자에게 전달되는 ‘이미지’가 좋지 않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시간 날 때마다 사진전이나 포토북을 보면서 이미지에 대한 감각을 날 서게 해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센스 있는 에디터가 될 것이다.
쉴 틈 없는 고단함의 연속
에디터란 늘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고단한 사람이다. 이제 좀 일이 손에 잡혔다 싶으면, 개편 시기가 찾아온다. 한 번도 맡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해야 할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기가 없던 코너는 왜 그랬을지 이유를 분석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고, 새로운 코너를 기획하기 위해 빈 도화지 위에 머릿속에 있는 새로운 내용을 담아야 한다. 새 레이아웃 시안을 찾아 디자이너와 회의하는 시간은 그렇게 고달플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을 견디기 위해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니 즐길 줄 아는 배포가 필요하다.
변화만 즐길 줄 알면 좋겠지만 에디터는 손도 빨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 신문, TV, 타 매체 잡지, SNS 페이지, 온라인 커뮤니티 등. 정보가 존재하는 모든 곳엔 항상 에디터의 눈과 귀가 닿아있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회사에 도착 후 아무리 업무가 밀려 있어도 최소 30분에서 1시간 30분은 이런 뉴스 소스들을 검색하고 찾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트렌드라는 건 ‘자, 이제 공부해볼까!’라고 해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매일매일 습관적으로 정보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남들의 의견을 따르는 게 아닌, 의견을 내고 유행을 선도하는 슈퍼 에디터가 될 수 있다.
한 가지 더, 어떤 직업에나 필요하겠지만 나는 ‘에디터적인 체력’을 강조하고 싶다. 에디터적인 체력이란 쉽게 말해 순간 집중력의 폭발이다. 에디터는 다른 직무와 달리 일이 데일리 단위로 꾸준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어느 날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게 바쁘지만, 마감이 끝나고 나면 태풍이 쓸고 간 시골 마을처럼 고요한 일상이 시작된다. 일이 없을 때 다음 마감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고 다양한 정보들을 습득했다가, 축적된 체력을 일이 쏟아질 때 한 번에 폭발시키는 스킬이 없다면 과중한 마감 업무를 견디기 힘들 것이다.
결국 사람이 답이다
에디터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참 많음을 느낀다. 누군가를 섭외하거나 취재할 때, 혼자 하면 10시간 걸릴 일이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전화 한 통으로 손쉽게 해결된다. 기사를 쓸 때 팩트를 체크하려 열심히 자료를 찾아보는 것보다, 관련 분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깊이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다. 그만큼 사람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촬영이나 취재를 해보면 ‘오늘 딱 한 번 만나고 말’ 사람들이 참 많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세상은 좁고 대한민국은 땅덩어리는 더 좁은 법. 돌고 돌아 다시 만나거나 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정말 딱! 한 번은 찾아온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단발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어놓아야 한다.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먼저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웃어주며 호감을 사놓는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 쉬워 보이지만 이것만 잘해도 관계에 있어 80점은 먹고 들어가는 거다. 명함 관리도 마찬가지다. 받고 책상 서랍 어딘가에 넣어놓는 데서 끝내면 안 된다. 명함에 펜으로 그 사람에 대한 간략한 정보나, 파생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적어놓는 게 나중에 꺼내봤을 때 훨씬 보기 편하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사람을 ‘기술적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사실 훨씬 도움받기 쉬운 사람들은 일하면서 만난 이들이 아닌, 내가 원래 알던 친구와 선·후배들이다. 아무래도 부탁할 수 있는 범위나 얻을 수 있는 정보의 깊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가 전혀 없이 인간적인 유대감에서 오는 관계의 힘은 그 어떤 것보다 강하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 한 가지. 평소 연락도 안 하다가 휴대폰 연락처에 있고, 14년 전쯤 잠깐 친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날 불쑥 연락해 곤란한 부탁을 한다면 그건 정말 곤란하다.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조건 없이 해줄 의무는 없다. 정말 그 사람도 나를 친구로 생각할 수 있게끔 평소에도 왕성한 교류가 있어야 한다. 에디터라면 좋아하는 친구들과만 연락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엄청 좋아하지 않는 친구더라도,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분야에 있다면 평소 돈독한 관계를 맺어놓는 센스도 필요하다.
여기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슈퍼 에디터의 조건들이다. 내가 일하면서 느낀 여러 가지 점들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슈퍼 에디터라는 게 별 것 없다. 세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대한 애정. 그리고 내 생각과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고 싶다는 긍정적인 지적 허영심.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잡지사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슈퍼맨이 될 수 있다. 슈퍼 에디터가 되는 그 날을 상상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