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은 스타트업에 오지 마라
직접 보고 경험한 스타트업만의 특징을 바탕으로 정리한,
스타트업으로 이직할 때 고민해 보아야 할 3가지
스타트업으로 회사를 옮기고 나서 이전 회사 동료나 대학 동기들을 만나면 스타트업은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지 많이들 궁금해하기도 하고, 자기도 스타트업에 지원해볼까 속 빈 출사표를 공수표처럼 남발하기도 합니다. 마치 ‘내일부터 유튜브나 시작해 볼까?’ 정도의 느낌으로.
아마도 실리콘밸리 발 글로벌 IT 기업들의 폭발적 성장과 미디어에서 비치는 스타트업들의 모습이 다소 판타지스럽기 때문일 텐데, 막상 그 안에 발을 들여놓고 보면 거기나 여기나 치열하게 하루하루 버텨내야 하는 노동의 현장인 건 매한가지입니다.
다만, 기업의 규모와 속해 있는 산업의 결이 다르다 보니 일하는 방식, 협업 방식, 조직 운영 방식에 있어서 기존의 기업들과는 조금(솔직히 많이) 다른 스타트업만의 특징이 있는데, 한국의 전통적인 기업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직접 보고 경험한 스타트업만의 특징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3가지 주의사항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3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본인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있다면 판타지는 판타지로 남겨 놓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 일의 체계를 스스로 만들 수 없는 사람은 스타트업에 오지 마라.
블라인드 기업 리뷰에서 스타트업 회사들을 검색해 보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불만 사항이 “체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체계가 없다”는 말 자체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될 수 있는데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해 보자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의사결정을 받고 액션을 취하기 위해 정해진 규칙 또는 프로세스가 없다는 말입니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겠지만… 더 이상은 나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체계가 없다’는 말은 ‘사수가 없다’ ‘교육이 없다’는 불만 사항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정해진 일의 프로세스가 없기 때문에 그걸 당신에게 알려 줄 사수도, 교육도 없는 게 당연합니다.
그럼,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냐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스타트업에는 정해진 프로세스는 없지만, 구글 드라이브와 잔디(혹은 슬랙)에 ‘아카이빙’되어 있는 히스토리가 있습니다. 당신이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동료에게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질문을 하면, “잠시만요, 자료 보내드릴게요.”라는 대답과 함께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히스토리 모음 링크가 당신의 메신저 창에 켜켜이 쌓이는 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다음엔 어떻게 하냐고요? 날짜도, 작성자도 뒤죽박죽인 그 자료들을 읽고 또 읽고 이렇게 저렇게 퍼즐을 맞추다 보면, 대충 그림이 나오는데, 아마도 그 진행 과정이나 결과물이 당신 마음에 쏙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부터가 진짜 당신이 할 일입니다. 그 부족한 부분을 당신이 채우고 메워서 일의 과정과 결과를 좀 더 나은 그림으로 만드는 것. 현재의 상황과 환경에서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점들을 연결해서 일이 되게 하고, 그 일이 반복되는 종류의 것이라면 다음번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당신이 직접 프로세스와 체계를 만들어 후대에 전해야 합니다. 아! 그렇다고 당신이 만든 프로세스가 회사의 표준이 될 거라고 기대하진 마세요. 그 회사가 스타트업으로 남아있는 한, 당신 후임자 눈에는 당신의 프로세스 또한 히스토리 모음 링크 중 하나일 테니까요.
혹시 당신은 정해진 일의 체계와 프로세스가 없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일의 순서와 규칙을 스스로 만들고 필요하면 품의서든 계약서든 보고서든 피티 자료든 그때 그때 새로운 양식과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어서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은 스타트업에 맞지 않습니다.
2. 사람, 기술, 트렌드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오지 마라.
스타트업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합니다. 반드시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정해진 규칙이나 절차가 없기 때문에 일하는 방식이 매 번 바뀌고, 대표가 거의 모든 실무에 깊게 관여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표가 가지고 있는 그때 그때의 생각과 정보, 때론 감에 따라 의사결정의 방향성이 휙휙 바뀝니다.
인트라넷도 없고, 회사 전용 IT 인프라도 없기 때문에 3rd Party Tool을 다양하게 활용하는데, 회사 생활 내내 사용해 본 업무 Tool이 워드/엑셀/파워포인트 밖에 없는 직장인이라면 듣도 보도 못한 Tool 사용에서부터 애를 먹습니다.
‘그까짓 거 대충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그나마 가장 쉬운 프로그램이 구글 스프레드 시트인데, 이게 생긴 건 엑셀이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기능과 사용법이 미묘하게 달라서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은 모두 구글 시트로 파일을 만들고 공유하는데, 엑셀 사용을 고집하다가 주변 팀원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경력자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구글 시트]는 작은 돌부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내 메신저를 대신하는 [잔디]나 [슬랙], 구글 시트보다 한 단계 난이도가 높은 DB 관리 Tool [에어테이블], 이슈 트래킹 Tool [Jira], 팀원 간 협업 공간을 제공하는 노트 Tool [노션]과 [에버노트], 업무 자동화 Tool [Zapier], 단체 메일 보내기 Tool [스티비] 등등등… 효율적인 협업과 업무 처리를 위해 새롭게 배우고 익혀야 할 IT 스킬과 트렌드가 범람하는 곳이 스타트업입니다.기술과 트렌드만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도 금방 변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개인이 변하는 게 아니라 조직 구성원이 휙휙 바뀝니다. 입사/퇴사가 빈번하고, 인력 턴오버율이 상상을 초월하는데요, 스타트업 재직자들은 평균 근속 년수가 만 2년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기업처럼 안정적이지도 않고, 회사 인지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경력직 채용을 원하는 회사들이 수도 없이 많은 스타트업 채용 시장의 특성상, 회사나 대표에 불만족스럽거나, 스스로 정체된다고 느끼거나, 더 좋은 기회가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이직 카드를 꺼내 드는 스피드가 매우 빠르고 빈번합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1년 이상 나와 함께할 동료라고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나보다 늦게 입사한 동료가 나보다 오래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입사 3개월 안에 퇴사하는 경력자들을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다들 알겠지만, 사람이 들고 나면 업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기가 어렵습니다. 떠난 사람 일이 갑자기 내 일이 되기도 하고, 넘겨줬나 싶었던 일이 다시 돌아오기도 합니다. 스타트업의 성장을 감속시키는 인력 운영의 한계입니다.
불안정한 인력 운영, 계속해서 새로운 스킬을 배워야 하는 업무 환경, 일하는 방식의 잦은 변화가 당신에게 도전의식이 아닌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 같다면 당신은 스타트업에 맞지 않습니다.
3. 실무 잘할 자신 없는 리더는 오지 마라.
대기업에서는 팀장급 이상이 되면 실무에서 조금씩 손을 떼고 조직 관리와 의사결정(+ 사내 정치)에 일의 무게 중심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간혹,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서 팀장, 본부장, 총괄 등의 리더 직함을 달고 오는 경우, 이전 회사에서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시의적절한 의사결정과 올바른 방향성의 설정, 적재적소의 피드백만으로도 리더의 역할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기존 멤버들 혹은 당신을 영입한 스타트업 대표가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 이상입니다.
실무를 하지 않는 리더, 실무를 모르는 리더, 실무 역량이 부족한 리더는 팀원들이 따르지 않습니다. 애초에 리더에게 모든 의사결정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 모두가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를 기대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리더는 의사결정자임과 동시에 팀원들보다 더 나은, 그리고 더 많은, 더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실무자이길 기대받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실무란 필요한 자료는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다른 조직과의 복잡한 R&R을 나서서 정리하고, 대표나 고객과의 껄끄러운 커뮤니케이션은 알아서 처리하는 그런 일을 말합니다. 대표에게 보내는 메일을 팀원에게 대신 쓰게 한다거나, 미팅 자료는 모두 팀원에게 맡긴다거나, 고객에게 보낼 제안서 작업을 지시만 하고 결과물에 대해 피드백만 늘어놓는 꼰대스러운 업무 방식, 손은 가만히 두고 입으로만 일하는 스타일의 리더는 스타트업 조직에서 절대 환영받지 못합니다.
혹시 당신이 현재 실무에서 손을 놓은 지 너무 오래되었고, 다시 실무자로 일할 열정과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혹은 평균 연령대가 낮은 스타트업으로 옮겨서 연장자라는 이유로, 경험자라는 이유로 입만 털어도 일이 되게 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스타트업에 절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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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김필재(워킹대드 Working Dad) 님이 작성한 ‘이런 사람은 스타트업에 오지 마라’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스타트업 업무 문화나 ‘스마트’하게 일 잘하는 법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김필재 님의 브런치에 방문해보세요.